2014년 2여신도회 표어는 ‘말씀과 나눔’입니다.
하여 올 한해, 미리 정해진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모임 때마다 함께 그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이 글은 2월 정기모임 때 가진 묵상에 대한 작은 기록입니다. 글의 성격상 실명은 밝히지 않기로 했으며 교우님들의 댓글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정리 / 정유진(서기)
바울과 유두고
(성경구절 : 행 20:7~12)
<본문요약>
이 구절은 초대 교회의 복음을 전하는 모습, 말씀을 사모하는 열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갈 길을 알지 못하는 많은 무리가 바울의 말씀을 듣기 위해 작은 공간에 모여 밤이 깊도록 열중했지만, 등불로 인한 연기와 그을음으로 집 안의 공기는 탁해지고, 그만 산소 부족으로 졸게 된다. 그 와중에 3층 창문에 걸터앉아 있던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만다. 모두가 그 일로 우왕좌왕 소란을 피우는 상황에서, 바울은 죽은 유두고를 끌어안은 채, 떠들지 말 것을 사람들에게 권유하며 유두고를 살려낸다. 그리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이 하던 강론을 날이 새도록 끝까지 전하고 떠난다.
-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않은 불상사가 일어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몇 가지 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장소를 잘 선택해라(집회나 예배 시, 앞이나 중간자리가 좋다)
둘째, 영적 졸음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라.
셋째, 항상 깨어 있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자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린 엘리야처럼)
넷째, 졸지 말고 늘 깨어 있는, 기도하며 세상을 깨우는 신자가 되자.
- 이 말씀 묵상을 통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냥 열심히 하기보다, 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고, 또 그것이 꼭 필요치 않다면 그만 내려놓아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영적 침체는 타성에 젖게 하고 망각에 빠지게 하며 종내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
여기에 이어지는 몇 가지 생각들이 있었다.
(1) 내 자신이 언제부터 아침 묵상을 그만두었는가?
(2) 깨어 있을 때 얻는 것이 무엇인가?
(3) 얻을 것이 없다면, 차라리 졸지 말고 깊은 수면을 취하는 것이 내일의 출발을 위해서 더욱 유익하리라.
- 연말연시는 언제나 너무 분주하기 마련이다. 이 말씀묵상으로 인해 구정 설날을 맞아 2014년을 다시 새롭게 다짐하고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 ‘영을 살리는 자리’에 있는 것이 중요하고 그 자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갖도록 항상 정신을 차려야 한다.
- 모든 모임 안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으나 서로가 도움을 필요로 한다. 깨어 있는 누군가는 죽은 이를 살릴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와 기도와 중보 기도와 감사 기도를 드리라고 그대에게 권합니다.”(디전 2:1)
내가 깨어 있음으로 해서 내 자신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 이방인들까지 살릴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도이다. 이것은 먼저 사명을 받은 자의 역할이다. 김하중 장로님의 책 <하나님의 대사>를 보면, ‘내 뒤에 수많은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은 중보 기도가 쌓여 있다(폭포기도)’라 고백하고 있다.
<간증>
분주한 곳에서 한적하고 아주 외딴 곳으로 나를 보내신 하나님, 외로운 상태에서 오로지 말씀만을 사모하게 하시고 하나님과의 더욱 친밀한 관계를 갖게 한 7년간의 기간 동안 나는 하나님의 동행을 체험했으며 또한 성령체험을 했다.
조용한 시간에 갖게 된 자연과의 만남은, 만물 생명의 소산을 보는 눈이 생기고 영적인 눈이 열리며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의 비밀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믿음은 지금 내가 갖고 있다는 것이 다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육의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까지, 그 믿음과 첫사랑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영적 싸움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알기를 원한다. 누군가의 중보기도가 내 뒤에 있었을까?, 있다면 누구였을까?, 정말 그 중보기도가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한 것일까 궁금해졌다.
- 이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다. 누구의 하나님도 아닌 ‘나만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모든 사인(신호, Signal)에 솔직하게 고백하고 나아가기를………. 자매님에게 주시는 ‘알고 싶어 하는 궁금증’이 바로 하나님의 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