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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4-07-16 (7월) 2여신도회 말씀 묵상 2-니고데모의 순수한 질문2020-11-07 14:28
작성자 Level 10

(7월) 2여신도회 말씀 묵상 2-니고데모의 순수한 질문

sandcatjoe 님께서 2014-07-16 02:28, 2178 hits

(말씀 묵상 1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성경을 접할 때, 단어 하나하나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단어 의미도 잘 모르겠고, 마음이 갈팡질팡해요. 그래도 모임에 와서 듣고 가는 얘기가 일상의 삶에 도움이 되긴 하지요.

-얘기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 같아요.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저는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제 삶을 보면 사실 긴가민가해요. 그래도 주님이 외아들을 나를 위해서 주셨댔으니까, 하고 믿는 거지요.

제가 만난 예수님은 어떤가 생각해봤어요.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에서 좌충우돌, 오히려 깨지면서 만나는 예수님이 진짜인 것 같아요. 믿음 저변에는 확신이 있어요. 늦게 신앙을 갖게 된 사람에게는 오히려 뜨거움이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교회에서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하잖아요. 그러다가 ‘성경말씀이 달다’란 구절처럼 주님의 말씀이 달다고 느낄 때는 나도 모르게 ‘아멘’하게 돼요. 주님은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다가오는 사람, 천천히 다가오는 사람 같습니다. 각자의 삶에 맞춤형으로 다가간다고 할까요.

-‘구원 받았다’는 건 무슨 뜻이지요?

-‘구원 받았다’는 건 죽음 이후의 삶에 관한 거예요.

-저는 좀 다르게 보는데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택함을 받은 것이 구원을 받은 삶이라고 생각 해요. 저는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권유하는데요. 그때마다 세상의 많은 신들 중에서 하나님을 택해서 너무 감사합니다, 하고 생각해요. 제 개인적으로는 정말 생명과도 바꿀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달았지요.

천국이냐, 지옥이냐의 문제에서도 구원은 있지만, 지금 여기 사자굴에서 하나님이 나를 건져주신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나를 살려주지 않으실지라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천국에 갈지 안 갈지 모르겠지만 천국에 못 가도 감사합니다, 하는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이후보다는 지금 이 땅에서 신실하고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겠지요.

-오늘 성경 구절에 보면 ‘그를 믿는 사람으로서 영생에 이르게 한다.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는데요. 이걸 보면 결국은 ‘믿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믿음이 곧 구원인 거지요. 언젠가는,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부활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고 봅니다.

-지팡이를 보자 병이 나은 것처럼, 예수님이 저 때문에 십자가에 달렸다라는 걸 깨닫는 것이 구원입니다.

-처음 믿음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은 뭘 믿어야 할지 몰라요. 성경을 봐도 뜻도 잘 모르겠고……. 그런데 예수님이 어느 순간에 딱 만나주십니다. 예수님이 내게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성경 구절이 내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는 거지요. 저도 그랬어요. 처음 신앙생활 시작할 때는 예배도 어렵고, 찬양도 어색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상한 분위기에 적응할 수 없었지요.

-대학교 때, 기독교 동아리원들이 진드기처럼 달려들어 성경읽기 같은 동아리에 들 것을 권유하곤 했어요. 그런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뭔가 계획한 게 있으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예수님을 믿었지만 길거리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하는 사람들을 보면 거부감이 들어요.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도 생각하게 되더군요. “전하지 않으면 어찌 듣겠는가?”, 그게 부정적인 모습이든 긍정적인 모습이든 누군가는 그 말을 전했으니 또 누군가는 그걸 듣고 알게 되는 게 아닐까요. 누군가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필요하다고 봐요.

-처음에는 ‘영생’,‘구원’이란 말도 정말 이상하게 들렸지요.

-오히려 어린이들은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성경을 읽을 때는 신약부터 읽으면 더 접근하기가 쉬워지는 것 같아요. 구약부터 읽게 되면 율법 얘기가 나오니까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렵지요. 출애굽기, 창세기는 그냥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편하고, 신약 4복음서를 비교해서 읽으면 더 잘 읽히는 것 같아요.
저는 4대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선교사 시절부터 집안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집안에서 자라났는데요. 중학교 주일학교 때 성경을 몇 장 읽었는지 말해야 하는 숙제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 처음 성경을 꼼꼼히 읽었던 것 같아요. 몇 장 읽었는지 진짜로 읽어야 말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전도한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소곤거리는 소리를 듣고 충격을 먹은 적이 있는데요. 기도하면서 “하나님, 아버지”하고 저는 자연스럽게 시작하는데, 그 아이들이 작은 소리로 “아버지는 무슨 아버지야.”하는 거예요. 그게 저한테는 엄청난 충격이었지요.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세상은 예수님을 이처럼 핍박하는 거지요.

-저는 가톨릭 미사에 가면 너무 낯설어요. 같은 신앙의 뿌리를 가지고 있으니 인정은 하지만 어색한 거지요. 가톨릭 미사는 예배만 거의 2시간이 되고 광고는 모든 예배가 다 끝나고 하더군요.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너무 어색했어요. 신학적으로 가톨릭에서는 개신교 세례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요. 가톨릭 교도들은 개신교 교회에 가서 성찬을 받을 수 있지만, 개신교도는 그럴 수 없다고 하더군요. 가톨릭 법상 인정하지 않는 거지요. 예식이 문제가 아니고 그 자리 자체가 정말 이상했어요.

-‘영혼’이 문제인 거지요.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는 니고데모처럼 예수님을 찾아가면 됐지만 지금은 안 계시니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성경을 보다보면, 그때그때마다 다가오는 구절이 다 다릅니다.

-모든 사람들이 직접 성경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성경 쓰기도 좋아요. 자주 읽었는데도 시험에 들 때가 있어요. 신앙적으로 나태해질 때지요. 그때는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말씀이 안 들어와요. 성경 말씀이 꿀 같이 달았던 때가 언제인가, 자괴감이 들지요. 그런데 성경을 쓰게 되면, 더 자주 읽게 되거든요. 나 자신을 위한 세레모니처럼 말이지요.

-믿음을 시작하는 것보다 믿음을 지키는 것이 힘들다고도 말할 수 있어요.

-혼자 지키는 게 어려우니까 같이 지키자고 하는 거지요. 설교를 들으면 그런 걸 깨닫게 돼요.

-마틴 루터도 두려움이 있었대요. 내가 이렇게 믿다가 죽는 순간에 믿음을 읽어서 천국에 못 가면 어떨까하는 두려움에 떨었다고 하더군요.

-믿는 사람도, 언제 넘어지고 실족할지 모르는 거지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 다르게 만드셨으니 다 다르게 만나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나가고 싶어 했는데 아버지 반대가 심했어요. 예배 드리고 찬송 부르는 모습이 좋았고 이모네도 기독교인이었고 고모네 가족들 중엔 목사님도 있었어요. 그런데도 반대하셔서 몰래몰래 교회에 가곤 했어요. 독일에 와서 아는 동생의 권유로 교회에 왔는데 처음엔 많이 불편하더라고요.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아무래도 더욱 하나님을 찾게 되지만 저는 저만의 하나님이 있다고 믿어요.

-어렵고 힘들 때보다 시간이 흐르고 안정이 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시련이 생기는 것 같아요.

-우리가 어둠 안에 살기 때문에 그렇지요.

-시련은 다 똑같이 오는 거지요. 믿는 사람은 기댓값이 있기 때문에 다르게 그 시련을 받아들이는 거죠. 세상적으로 해결하거나 세상의 잣대로 해결하려고 하면 더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것 같아요. 세상에 의지하고 세상 말을 들으면 더 일이 꼬이고 안 된다고나 할까요. 어느 순간에 ‘이건 아니구나’하는 깨달음이 오더라구요. 그래서 매주 예배 드리고 성경 말씀 읽고 그래야 하는 거지요.

-매주 예배를 지키라고 하는 것이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요. ‘우리가 주님께 해드릴 수 있는 게 뭘까?’생각해보면 예배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아, 예배를 통해서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려고 하는구나’ 깨달았어요. 그렇게 또다시 일주일을 살아갈 힘을 주시는 거지요.

(끝)





Last edited by sandcatjoe (2014-07-15 23:30)

 

Posts [ 1 ] | Last post 2014-07-16 02:28
Martin
#1 - 2014-07-16 02:28
Martin

제 2 여신도회의 순수한 믿음이 니고데모를 통해 아름답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전에 남신도회를 구성하려고 할 때 그 명칭을 니고데모회라고 하면 어떨까 하고 회원분들과 이야기 나누던 기억이 나네요…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여러분이 나눈 묵상을 글을 이렇게 정리해서 함께 나눠주시니 감사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각각 나누신 묵상의 내용을 보며 어느분이 이렇게 말했을까 추측해보는 재미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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