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여신도회 표어는 ‘말씀과 나눔’입니다.
하여 올 한해, 미리 정해진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모임 때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4월 5일, 홍태윤 교우 댁에서 4월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글은 큐티 묵상의 작은 기록입니다.
글의 성격상 실명은 밝히지 못함을 양해해 주시길 바라며, 교우님들께서 댓글로 교우님들의 묵상을 나눠주시길 소망합니다. 정리 / 정유진(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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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지만 좁은 문
성경구절 : 요한계시록 22장 12-21절
-이 성경말씀은,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고, 그저 도둑같이 오시므로 무슨 일을 행하든지 신심을 다해서 하라는 의미로 이해했어요. 예수님이 언젠가 다시 오시는 걸 기다리면서, 언제든지 부르실 때,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바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겠지요.
오늘 말씀은 또한 ‘상급’에 대한 이야기예요.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영생을 누리게 됐는데, 그것 말고도 또 다른 보상을 해주신다는 뜻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곁문이 아닌 대문으로, 거룩한 도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기적인 마음 말고) 옷을 빠는 거룩한 마음으로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과분한 대접이고, 참으로 관대한 표현인데 우상 숭배하고 이들처럼 행동하면 도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큰 죄를 당한다는 것을 또한 경고하고 있네요. 그리고 13절에 보면 이 모든 걸 알게 하시려고 천사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다 함께 오시라고 지금까지 열려 있는 구원의 문은 하나님이 원하실 때 닫히고 맙니다. 요한의 경고는 자신의 기록에 하나라도 덧붙이면 생명나무가 있는 도성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말고, 기록된 것을 그대로, 두렵고 떨리는 자세, 투명하게 받아들일 것을 우리들에게 요구합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바로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근거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각이나 의지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주님 말씀에 근거해서 행동하라는 거겠지요.
-하나님 믿는 자들은 주님 말씀을 항상 새겨 삶을 살아갈 때,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두려운 마음으로 살라는 의미인 것 같아요. 성경 구절에 나온 ‘거저 주신다’라는 표현과 의미가 저는 항상 마음에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거저 주신다’고 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게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럴려면 우리가 항상 깨어 있어야 하겠지요.
-‘거저 주신다’는 표현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거대한 주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죄지은 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받아주시는 거지요. ‘거저 주신다’라는 표현 안에 주님의 큰 사랑이 숨어 있는 듯합니다.
-저는 다른 구절, ‘합당한 상’이라는 낱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는 항상 내가 잘한 것에 대한 대가를 일반적으로 생각하게 마련이고, ‘상’이라고 하면 이렇게 해석되기 마련인데 이 성경 말씀은 잘못한 것에 대해서도 합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다른 측면을 시사하고 있어요. 그래서 늘 깨어 있으라고 하는 거겠지요. 머릿속으로는 깨어 있고 싶지만, 살다보면 우리는 그저 일상생활에 파묻혀 지내게 됩니다.
어제 읽은 책에 나온 ‘Lebenskunst’란 주제와도 관련이 되는데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생활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는 행위, 즉 ‘특별한 것을 찾아내는 눈’이 바로 삶의 예술이라고 하더군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지요. 이 성경구절과 일맥상통하지 않나요?
-잘못한 일에 대한 대가도 있으니 되도록이면 좋은 일을 한 대가, 좋은 상을 받는 것이 좋겠지요. 한편으로,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주님께 뭔가를 바라면 안 될 것 같아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 같은 거요. 그건 너무 당연한 건데 그거 하고 나서 보상받고 싶어 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주님은, 못한 것도 있지만 잘한 거 한두 가지 때문에 우리를 구원해주십니다. 근데 그 한 가지로만 구원받는다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생각되더군요.
-저는 이 성경구절을 이렇게 이해했어요. 하나님 나라는 항상 문이 열려 있고,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게 구원이고, 성 밖에 있다는 건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이라고요. 하나님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문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절대 순종하고, 내가 행한 많은 죄들을, 내 옷을 빨듯이 뉘우치고 회개하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걸 전제로 했을 때에야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지요. 너의 죄를 깨우치고, 즉 나를 주님 앞에서 내려놓고, 순종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문이라는 거지요.
-저도 옷을 빠는 행위를, 평소에 자기 죄를 회개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어요. 회개하는 자만이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늘 마음의 중심에 있으면, 하나님이 뭔가 과재를 주셨을 때 어떻게 하는지 하는 나의 행위도 중요한 것 같아요. 믿음만으로는 무조건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냐, 얼마만한 크기의 믿음이냐 하면 또 쉽게 말하기 어렵구요.
-겸손해지면, 나의 믿음이 스스로 보인다고 생각해요. 주님 역시 그런 저의 모습을 보면, ‘그래, 네가 네 믿음을 아는구나.’하실 거라 믿습니다. 나는 이렇게밖에 할 수 없지만 옷을 빠는 것, 즉 2차적인 거듭남, 영의 거듭남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나는 죄인입니다.’하고 고백하는 것도 ‘나’가 깨지는 순간이지요.
-죄 사함은 나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주 말씀으로 저희들이 값없이 받은 것입니다. ‘세례’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어요.
-주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 믿음의 타이틀만으로는 성 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요한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즉, 걸러진다는 것이지요. 영적으로 거듭나고, 자신의 옷을 빨 이 죄를 회개해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 문, 즉 ‘넓지만 좁은 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율법학자들을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들은 율법은 지키는데 오로지 내 행위가 중요하고, 주님이 중심이 아니라 오로지 작은 규율 지키기에 급급한 오류를 저질렀지요.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십계명이 있었지만 그 십계명이 안 지켜질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준수한다는 건 사랑과 믿음을 통해서 해야 되는데 그 중심을 망각한 거지요. 율법만 잘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바로 ‘자기 의’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게 아님을 깨우쳐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다시 오신 것이지요.
-요한의 말처럼 성경 말씀은 어느 한구절도 버릴 게 없어요. 빼지도 말고 더하지도 말고 그대로 지키면 값없이 주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을 수 있겠지요.
-저 같은 경우는, 주일날 교회에 와서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고 평일에는 그 회개가 또 온데간데없어지지요. 밤에 자기 전에 또 낮의 잘못을 회개합니다. 그러나 다음날 다시 반복하게 되구요. 사도 바울도 똑같이 고백한 바 있듯이 죄수에서 괴수로 변하는 것, 자기의 모습을 깊이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너무 스스로를 정죄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왜 정죄합니까. 그건 주님이 하는 겁니다.
-언젠가 우연히 본 성경구절이 생각나네요. “그래서 너희는 하나님이 아니다, 인간이다.”라는 의미였어요.
-자녀의 기도를 들어보면, 그 기도가 참 좋은 기도인 것 같아요. 제일 잘못한 것 먼저 고백하고, 용서해달라고 하고, 건강 달라고 하고 그 다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으로 마무리하는 것이요.
-왜, 어린아이 같아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잖아요. 그런데 자기 죄를 인식하는 것도 사실 쉽지 않은 일이지요.
-저 같은 경우는, 항상 너무 신경 써서 도리어 스트레스를 받아요. 내가 이 말을 하면 이 사람이 상처받을까, 어떨까 늘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프지요. 한 번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주님께 죄를 고백하고 빨리 잊어버리는 것도 좋겠네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기도가 중요해요. 어떤 관계를 가지더라도 기도를 많이 해보시길 권합니다.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시험에 들게 되지만, 기도를 하게 되면 하나님께 맡기게 되지요. 관계도 하나님께 맡겨 놓고 나면 마음이 편합니다. 간절히 원하면 안 주시지만, 맡기면 주십니다. ‘맡기는 믿음이 어린아이 같은 믿음’인 것을 잊지 맙시다.
-제가 어떻게 기도를 하나 잠깐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구체적인 기도가 좋지 않을까요?
-주님께서 내가 뭘 하는지, 뭐가 부족한지, 뭘 원하는지 모르셔서 구체적으로 일일이 기도해야 하는 건 아니지요.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대화’라는 걸 잊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주님께서는 저희들과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기도 좀 잘하게, 유창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가 있어요. 기도를 사모하는 기도지요. 그런데 그럴 때면 너무 내 기도만 하니까 하나님이 안 받으시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해요.
-저는 사는 게 너무 바쁘니까 가끔은 ‘하나님, 기도할 시간 좀 주세요, 기도 좀 하게 해주세요.’ 기도해요. 근데 사실 틈틈이 기도할 때가 많아요. 순간적이지만요.
-가톨릭에서는 ‘화살기도’라는 게 있다고 해요. 순간적으로 하는 기도지요. 시간 내서 기도하는 것 말고 생각날 때마다 기도하면 좋겠지요. 카톡을 하면서 ‘기도할게’라고 문자를 쓰면, 그 ‘기도하겠다’라는 마음이 같이 가는 것, 전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만 하고, 문자만 보내고 진짜 기도 안 하면 ‘내가 거짓말쟁이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 말을 하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전달된다고 봅니다. 저도 길을 걸으면서 기도할 때가 많아요.
# (참고) 화살기도- 아무 때나 순간적으로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매달리듯 그때그때 느껴지는 정(情)과 원의(願意)대로 간단하게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화살처럼 직통으로 하느님께 간다고 해서 ‘화살기도’란 이름이 붙었다. 예를 든다면 “예수, 마리아여!”, “하느님, 나를 도우소서”, “내 주시오, 내 천주로소이다”, “지극히 거룩한 예수 성심이여, 내 마음을 네 마음과 같게 하소서!” 등이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오늘 모임처럼, 너무 즐겁고 좋으면 ‘감사합니다’란 말이 절로 나오지 않아요? 그게 감사기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서 내 상황을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오늘 큐티 내용 정리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는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인지, 그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주고 있습니다. 7절에 보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나와 있어요.
생명수가 있는데도 못 마시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님이 오실 때를 위해, 자신의 옷을 빠는 신부 같은 자세를 우리 서로 잃지 맙시다.
(끝)